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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칼럼] 변희수 하사의 죽음 앞에서

등록 :2021-03-18 16:03수정 :2021-03-19 19:28

전가의 보도처럼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에겐, 변 하사에 앞서 세상을 등진 김기홍 성소수자 활동가의 한마디를 던지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저 살아가는 건데 왜 존재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는 거죠?”

홍세화ㅣ장발장은행장·‘소박한 자유인’ 대표

변희수 하사가 끝내 세상을 등졌다. 성소수자들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과 혐오, 차별과 배제를 자양분으로 삼는 통치 질서와 그런 환경에 한 존재로 맞서기엔 너무 외롭고 힘에 부쳤던 것일까. 당당하게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성전환 수술 후에도 이전과 똑같이 기갑부대 요원의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겠다면서 거수경례를 올리던 그의 모습이, 그 울음과 외침이 뒤범벅된 울부짖음의 표정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동시대를 사는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회한과 안타까움은 분노의 감정이 되어 육군 수뇌부와 국방부를 향한다. 변 하사의 선택을 허락하고 지지해준 부대장이나 동료 군인들과 달리, 수뇌부는 그에게 ‘심신장애 3급’ 판정을 내려 전역을 강제했다. 심신장애…! 설령 그들이 직접 변 하사로 하여금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말할 수 없을지라도 죽지 않게 할 수 있는 권능을 갖고 있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군 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은 4년 전 후보 시절의 “동성애에 반대한다”는 견해에 변화가 없는 것인지, 아니면 성소수자 문제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암묵적 표시로 대신하려는 것인지, 청와대로부터는 유감 표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 난을 통해 성소수자 해방 과제와 관련하여 칼럼을 썼던 서생은 현실 정치인들에게 다시금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땅에서 성소수자들에 대한 ‘살림(活人·활인)의 정치’를 계속 ‘사회적 합의’라는 비겁함 뒤에 숨겨둘 것이냐고? 그렇다면 왜 정치를 하냐고? 살림의 정치를 제외하면 정치의 소명으로 무엇이 남느냐고?

가령 프랑스의 사상가 자크 랑시에르에게 진정한 정치는 “배제된 자들의 주체화 과정”이다.(<정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 정치적 주체는 특정의 객관적 속성에 의해 규정되는 게 아니라, 기존의 통치 질서에 맞서 정치투쟁을 펼칠 때 형성되는 것이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에 따르면, 변희수 하사야말로 진정한 정치의 주체로서 행동했고 발언했다. “아마 저 혼자의 싸움만으로는 안 될지도 몰라요. 저 다음에 또 누군가가 나와야 인권 신장이 되고, 그래야 저희 같은 사람들이 차별받지 않고 사회에 녹아들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의 싸움, “기갑의 돌파력으로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그의 의지는 구태를 벗지 못한 통치 질서의 강고한 벽 앞에서 좌절하고 말았다. 그를 통해, 또는 그와 함께 변화를 기대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열망도 차갑게 식어야 했다.

변 하사의 죽음 뒤에 안타까움이나 추모의 뜻을 표명한 현실 정치인들이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러나 말뿐, 행동으로 나서는 정치인은 드물다. 애석함의 표시만으로 변 하사의 영혼을 위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을 그들이 모를 리 없건만. 작년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에는 특별한 게 담겨 있지 않다. 나이, 성별, 장애를 비롯해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의 차이로 차별받지 않아야 한다는, 민주공화국에서라면 당연하고 상식적인 요구가 담겨 있을 뿐이다. 그런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국회의원이 적은 탓에 법안은 열달째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전가의 보도처럼 사회적 합의를 내세우는 정치인들에겐, 변 하사에 앞서 세상을 등진 김기홍 성소수자 활동가의 한마디를 던지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우리는 그냥 존재하는 사람이고, 그저 살아가는 건데 왜 존재에 대한 합의를 해야 하는 거죠?”

성소수자들의 연이은 죽음이라는 슬픈 소식이 전해지는 터에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안철수 후보는 ‘퀴어 축제를 보지 않을’ 권리를 주장했다. 보지 않을 권리는 “보이지 말라”는 요구다. 존재를 드러내지 말라는 거다. 만약 그가 시장으로 선출되면 일년에 한번 열리는 퀴어 퍼레이드조차 보이지 않게끔 변두리로 추방할 셈인가. 얄팍한 표 계산으로 배제의 정치를 관철하려는 게 그가 평소 주장해온 새 정치의 내용물인가.

얼마 전 타계한 미국의 진보적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는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는 말을 인용했다. 그런데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읽고 고려해야 할 사람은 판사들보다 정치인들이다. 아니, 시대의 기후를 미리 읽을 필요도 없다. 지금 눈을 옆으로 돌려 주변의 날씨를 참조하는 것으로 족하다. 국회의원들에게 당부하거니와 진도 좀 나가자는 것이다! 이 난을 통해 쓴 내용들을 또 반복하지 않아도 되게끔. 21세기 벽두인 2001년에 네덜란드에서 동성결혼권이 처음으로 법제화되고 유럽 나라들이 속속 그 뒤를 이으면서 “19세기가 노예해방의 세기였고 20세기가 보통선거권(여성 참정권)의 세기였다면, 21세기는 성소수자들이 해방되면서 시작되었다.”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독일도, 또 미국도 합법화했고, 우리와 문화적으로도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대만도 합법화했다. 21세기도 21년이 지났는데 우리에겐 아직 동거권(생활동반자법)도 없다. 하지만 시대의 기후에 담긴 뜻은 명료하다. 아무리 부박한 땅이라 할지라도 오늘 노예해방이나 여성 참정권이 지극히 당연한 일이 되었듯이 성소수자 해방도 당연지사가 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파리와 암스테르담 등의 유치학교에는 ‘엄마가 둘’인 친구를 가진 어린이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어제 학교로 친구를 찾으러 온 ‘엄마’와 오늘 찾으러 온 ‘엄마’가 다른 것이다. 그곳의 레즈비언 커플은 아이를 입양하여 기를 권리뿐만 아니라 정자은행을 통해 자신의 생물학적 자녀를 가질 권리도 누린다. 대리모에 관한 규제를 받는 게이 커플의 경우보다 훨씬 쉬운 편이다. 그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가장 첨예한 토론 주제의 하나는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생물학적 ‘부’(또는 ‘모’)가 누구인지 물었을 때 어떻게 답할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그 아이들은 “정상가족”이라는 개념을 이해하지 않을 것이며 이해할 필요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대한민국 헌법 제10조다. 헌법 정신도 우리에게 묻고 있다. 성소수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는 국민이 아닌가? 유럽의 성소수자들이 누리고 있는 행복추구권에 비추어 지금 여기의 성소수자들은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누릴 수 없는가?

우선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도록 힘을 모으는 것, 이것이 변희수 하사를 비롯하여 죽음을 택한 성소수자들의 명복을 빌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성소수자 해방의 날이 기어이 올 것이라는 시대의 기후를 확인하면서! 우리의 과제는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기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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