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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기 너머에 사람이 있습니다

등록 :2022-01-21 05:00수정 :2022-01-21 09:29

의료인류학자가 만난 콜센터 노동자들의 일과 삶
‘감정노동’으로 담아내지 못하는 통제된 ‘몸’의 ‘정동노동’
저항하고 회복하고 연대하는 ‘손 들기’에서 실마리 찾기

사람입니다, 고객님
콜센터의 인류학
김관욱 지음 l 창비 l 2만원

콜센터 상담사들은 화장실에 갈 때 ‘손’을 든다. 그 몇 분까지도 통제·관리되기에 허락받아야 한다. 진짜 손을 들기도 하고 단체채팅방에 ‘ㅅ’을 쳐서 동의를 구하기도 한다. 돌아왔다는 신호는 ‘ㄴㄹ’이다. 누군가 손을 ‘내린’ 뒤에야 또 다른 누군가가 손을 들고 자리를 잠시 비울 수 있다. 부채를 들어야 화장실에 갈 수 있는 콜센터도 있다. 상담사 200명이 넘는 콜센터에 부채는 6개가 걸려 있을 뿐이다.

콜센터가 밀집된 서울 금천구 가산동 디지털단지오거리는 원래 가리봉오거리였다. 많은 콜센터 노동자들이 일하는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구로공단이었다. 구로공단은 섬유·봉제(1960~70년대), 전기·전자(80년대), 종이·인쇄(90년대)를 거쳐 2000년대 들어 정보기술(IT) 분야 중심으로 변모했고, 50년 전 ‘공순이’라 불리던 여공들이 사라진 자리에 스스로 ‘콜순이'라 낮잡아 칭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이 자리잡았다. 이 ‘현대판 여공’들은, 콜센터 업체 중심으로 발간된 ‘2016 컨택센터 산업총람' 등을 보면, 2016년 기준 공식적으로 40만명, 비공식적으로 200만명까지 추산된다.

50년 전 ‘공순이’들의 야근과 철야 작업을 위해 잠 안 오는 약 ‘타이밍’이 제공됐다면, ‘콜순이’들에겐 흡연이 장려된다. 콜센터가 입주한 건물 옥상은 50년 전 공장 굴뚝처럼 연기를 피워 올린다. ‘콜순이’들은 불붙인 담배를 연거푸 빨아들이고 한숨처럼 내뱉으며 시름을 삭인다. 오가는 시간 포함 평균 4분마저 아까운 업체들은 사무실 테라스에 쾌적한 흡연장을 만들어줬다.

콜센터 상담사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콜센터 상담사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사람입니다, 고객님>을 쓴 김관욱 덕성여대 교수는 가정의학과 전공의로 의료인류학자다. “병원 안에서는 질병 때문에 노동이 불가한 환자들을 마주했지만, 병원 밖에서는 노동 때문에 질병이 불가피한 이웃들을 마주했다.” 그는 고민의 답을 찾을 수 없어 병원 밖으로 나섰다. 흡연 문제에 대한 관심이 ‘흡연 천국’에서 일하는 콜센터 노동자들에 대한 현장 연구로 이어졌다. 2012년 연구를 시작했고 숱한 콜센터 상담사를 만났고 어렵사리 만들어진 노조를 목격했고 박사 논문을 썼고 이번에 책으로 펴냈다.

저자가 인터뷰하고 목격하고 체험한바, 콜센터 노동을 ‘감정노동’의 틀에 가두는 것은 충분치 않다. 감정노동으로 바라보면 ‘개인의 낮은 자존감’을 손쉽게 지적한다. 감정 이상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고객을 응대하며 감정만 조절하는 게 아니다. 몸이 통제·관리된다. 여름이 아닌데도 에어컨을 켜두고 창문을 모두 가리는 것은, 졸지 말고 창밖에 시선을 두지 말고 ‘콜'에만 집중하라는 강압이다. 관리자는 “미소 띤 음성과 생동감 있는 어미 구사”를 촉구한다. 분초를 따지며 콜 수로 실적 경쟁이 벌어지기에 ‘을들 간의 물어뜯는 경쟁’도 극단적인 ‘왕따’도 일상적이다.

콜센터 노동자들은 두통, 만성피로, 수면장애, 청력 손실, 위장장애, 피부 질환에 시달린다. 어깨·목·허리·손목·무릎 등 근골격계 통증을 달고 산다. 누적된 스트레스는 퇴근 뒤 음주와 폭식, 낭비로 이어진다. 체중과 함께 빚도 늘어난다. 한 상담사는 폭식을 “가난한 루저의 싸게 노는 법”이라고 말했다. 한 카드회사 콜센터 상담사는 안면마비 증상을 얻었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짜증이 늘었고 “입이 더러워졌다”고 털어놨다. 극심한 공황장애로 한달간 정신과 폐쇄병동 신세를 진 상담사는 ‘병원이 좋았다’고 했다.

콜센터 노동자들이 아픈 것은, 무엇보다 순응을 강요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상담사들은 악성 민원도, 정신적 트라우마도, 모두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고 감수해야 할 것으로 여기곤 한다. 저자는 스피노자의 ‘정동’(Affect)을 재해석한 들뢰즈의 개념을 차용해, 통제와 모욕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며 길들어가는 모습을 ‘정동적 지배’에 따른 것으로 보고, 이들의 노동은 감정노동이 아닌 ‘정동노동’이라고 규정한다. “헤드셋 너머 그 누군가가 상담사를 괴롭히고 있지만, 더욱 모멸감이 드는 것은 그럼에도 헤드셋을 벗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다는 현실”이다.

저자는 희망을, 역시 몸에서 찾는다. 실마리를 드러내기 위해 애쓴다. 정동노동은, 아프고 굳어버린 콜센터 노동자들의 몸을 설명한다. 아픔의 근원인 몸에서 또한, 극복의 노력이 이뤄질 수 있다. 우선 어렵사리 꾸려져 성과를 낸 미래콜센터 노동조합을 주시한다. 노조 행사에 참여한 저자는 어색하나마 ‘팔뚝질'에 동참하고 그 ‘손 들기’에서 저항의 의미를 읽고 ‘새로운 몸’을 찾을 가능성을 발견한다. “나의 의미는 나의 밖에 있다”(모리스 메를로퐁티)는 깨달음에서 동료들 간의 신뢰에 바탕해 저항은 실천된다.

저자는 노조를 드나들다 만난 ‘몸펴기생활운동’을 건강 회복과 저항의 연장선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상담사들은 몸펴기운동을 체험하며 건강해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되는데, 흡연이나 음주, 폭식 대신 ‘손을 들어’ 위축된 몸을 펴면서 통제가능한 치유 수단을 얻게 된다. 위축된 몸은 건강하지 않은 몸이 되고, 건강한 몸은 당당한 몸이 된다. 당당함은 몸에만 머물지 않고 자신감과 대인관계로 확장된다. “건강하고 당당한 몸이란 통증의 인내 혹은 해소가 아니라 통증의 발견과 실천에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강조한다.

인류학을 도구 삼아 콜센터를 해부한 행위는 학문 연구이지만, 의사인 저자의 넓은 의료 행위이기도 하다. 저자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하은씨’(4장)는 상담 일을 좋아했고 신경안정제까지 먹으면서 “관리자에게 ‘지지 않으려’ 했다.” 저자는 “이 책에 담긴 나의 모든 글이 그녀가 싸움에서 행복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적어도 알약 몇 봉지만큼의 힘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에필로그의 마지막 문장을 하은씨들에게 남겼다.

김진철 기자 nowher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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