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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원’ 제작진이 쓰러트린 말, 인간 위해 달리던 경주마였다

등록 :2022-01-21 18:51수정 :2022-01-21 21:19

[애니멀피플]
퇴역한 뒤 팔려와 6개월만에 비극…“드라마 폐지” 후폭풍
“오늘 죽어도 상관없는” 낙마 장면용 말 따로 있어
KBS, 2014년에도 유사 촬영…‘이방원’ pd가 당시 cp

드라마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에 동원됐다 촬영 일주일 뒤 사망한 말은 퇴역한 경주마였다. 카라
드라마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에 동원됐다 촬영 일주일 뒤 사망한 말은 퇴역한 경주마였다. 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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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방송(KBS) 드라마 ‘태종 이방원’의 낙마 장면을 찍은 뒤 사망한 말은 퇴역한 경주마인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애니멀피플의 취재 결과, 지난 11월2일 ‘태종 이방원’ 7회 이성계의 낙마 장면에 동원됐던 말은 경기도 한 말 대여업체 소속 말인 것으로 확인됐다. 업체 대표 이아무개씨는 애피와의 통화에서 “사망한 말은 마사회에서 구입한 말로 5년간 경주마 생활을 하다 지난해 이곳으로 오게 됐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까미’(예명)라고 불린 이 말은 주인공 말의 대역으로 이날 낙마 장면을 위해 투입됐다. 5~6살 된 까미는 경주마로 활동하다 성적이 좋지 않아 팔려오게 됐고 지난 11월 사망하기 전까지 약 6개월 가량 업체 소속으로 생활했다.(※ 주의: 동물의 상해, 잔혹한 장면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드라마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 촬영 당시 상황. 동물자유연대 제공
드라마 ‘태종 이방원’ 낙마 장면 촬영 당시 상황. 동물자유연대 제공

동물단체들이 공개한 촬영 당시 영상를 보면, 까미는 극중 인물인 이성계의 대역을 맡은 스턴트 배우를 태우고 달려오다 양 발목에 걸린 밧줄에 채여 앞으로 고꾸라졌다. 발목에 밧줄이 감긴 것을 모른 채 내달리던 말은 몸통이 공중에서 회전하며 바닥으로 내팽개쳐져 고통스러워한다.

해당 영상이 공개되고 ‘말 학대 논란’이 거세지자 KBS는 “사고 직후 말이 스스로 일어났고 외견 상 부상이 없어 말을 돌려보냈다. 최근 건강상태를 확인해보니 안타깝게도 촬영 1주일 뒤 사망한 것을 확인했다”며 사과했다.

“오늘 죽어도 상관없는 말들”

사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 대표도 비슷한 해명을 내놨다. 그는 “말이 고꾸라지는 장면은 한번으로 촬영이 끝났으며, 말의 머리가 바닥에 충돌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있었다. 땅을 어느 정도 파고 안에 매트는 설치했다”고 말했다. 이어 “충돌 뒤에 말이 제 발로 일어나서 건강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고, 촬영 직후 말이 죽은 것이 아니라 3~5일 뒤 사망해 KBS에 따로 알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KBS '태종 이방원' 게시판에는 '드라마를 폐지하라'는 항의글이 게시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동물 촬영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달라'는 청원글이 등장했다. 21일 현재 청원글은 8만 여건의 동의를 얻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KBS '태종 이방원' 게시판에는 '드라마를 폐지하라'는 항의글이 게시되고,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동물 촬영에 대한 대안을 마련해달라'는 청원글이 등장했다. 21일 현재 청원글은 8만 여건의 동의를 얻고 있다. 누리집 갈무리

업계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이러한 연출 방식은 오래된 관행이기도 하다. 한 관계자는 “말 대여업체에서도 보통 낙마 장면만을 위해 쓰는 말이 있다. 보통 폐마들, 오늘 죽어도 상관없는 말들을 투입한다. 이번 사고난 말도 그런 말이 아니었을까 한다”고 추측했다. 그는 “와이어를 거는 방식은 예전 사극에서 쓰던 방식”이라면서 “말의 안전이나 휴식권 같은 것은 현장에서 승마감독이 제안을 해야 하고, 계약서에도 요구해야 하는데 제작 구조상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이방원’ 피디는 ‘정도전’ 책임피디

한편 ‘태종 이방원’을 연출한 김아무개 피디가 KBS의 2014년 드라마 ‘정도전’의 책임피디(CP)였던 사실과, 정도전을 연출한 강아무개 피디가 태종 이방원의 책임피디인 사실이 드러났다. 드라마 정도전 역시 낙마 장면에 와이어를 사용한 적이 있는데, 비슷한 연출이 문제의식 없이 반복돼 온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KBS는 “사고”라고 해명했지만, KBS에 만연한 제작 관행이라는 비판이다. “공영방송인 KBS가 동물을 ‘소품’ 취급하고 있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2014년 드라마 ‘정도전’에서 두 마리의 말이 달려오다가 고꾸라지는 장면. KBS 화면 갈무리
2014년 드라마 ‘정도전’에서 두 마리의 말이 달려오다가 고꾸라지는 장면. KBS 화면 갈무리

한국재활승마학회 김정현 전 이사는 “문제 장면을 보면, 방송 제작진과 말 관계자가 말이 죽거나 골절상을 입을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사고를 막기 위한 조치의 흔적을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 전 이사는 “말은 예민하고 섬세한 동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장이 꼬이는 등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겨 죽음을 맞을 수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바닥에 넘어지는 사고를 당한 것은 말에게 굉장히 큰 스트레스를 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21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연 드라마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규탄 기자회견에서 말 분장을 한 참가자가 사고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한국동물보호연합 등 동물보호단체가 21일 여의도 KBS 본관 앞에서 연 드라마 ‘태종 이방원’ 동물학대 규탄 기자회견에서 말 분장을 한 참가자가 사고 장면을 재연하고 있다. 이정용 선임기자

동물단체 카라와 동물자유연대는 해당 장면의 촬영이 동물보호법 위반에 해당한다며 ‘태종 이방원’ 제작진과 프로그램 책임자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21일 고발했다. 카라는 “동물 역시 고통을 느끼는 지각력 있는 존재이며 생명은 촬영장에서 쓰이는 소품이나 도구가 될 수 없다”며 “공영방송 KBS는 이번 상황을 단순히 사과로 매듭지어서는 안 될 것이며, 학대에 대한 법적 책임은 물론 향후 동물 안전 보장에 대한 구체적 가이드라인을 마련해야 할 것”이란 입장을 밝혔다.

김지숙 기자 suoop@hani.co.kr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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